글 작성자: Gyumpic_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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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필름 디지털 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인 필름시뮬레이션.
 
 만약 나에게 가장 독특한 필름시뮬레이션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ACROS(아크로스)를 꼽을 것이다.

 

 FUJIFILM LEOPAN ACROS에 대한 이야기

후지필름 NEOPAN 아크로스 필름. 주목할 점은 그들이 자랑하는 최고 수준의 그레인 품질이다.

 
 후지필름의 NEOPAN ACROS(네오판 아크로스. 이하 아크로스)는 2018년 4월, 135 포맷과 120 포맷 모두 단종된 후 1년여가 지난 2019년 6월에 "NEOPAN ACROS 100 II"로 업데이트되어 발표되었다. 후지필름은 개선된 필름을 발매하며 일부 부품의 원자재 수급 문제를 해결했으며, 기존 제품과 비교해 하이라이트 부분의 그라데이션을 더욱 입체감있고 날카롭게 재현하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 아크로스 사용자들에 의하면 "원래 아크로스가 하이라이트의 선명도가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증언이 있고, 실제로도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레인을 강조했던 필름. 디지털 시대에서도 그들이 강조하는 것.

후지필름의 필름시뮬레이션 가이드 북, "화질 철학의 모든 것"

 
 
 한창 필름시뮬레이션에 빠져있을 때, 후지필름이 어떤 의도로 그것들을 만들었는지 조금 더 깊이있게 알고싶어서 구매했던 책이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필름시뮬레이션을 연구하거나 필름룩을 만들 때 참고서로 활용한다. 
 

아크로스 고유의 입자감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쓰여있다.

 
 흑백 필름시뮬레이션인 아크로스에 관한 페이지를 보면 굉장히 특이한 부분이 있다. 바로 "입자감"을 만드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대체적으로 입자감, 즉 "그레인"이라는 영역은 사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취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요소다.
 
 그레인은 사용자에 따라 의도하는 방향과 적용하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사진에 질감을 더하기 위해, 혹은 필름과 유사한 자글거리는 효과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특이한 대비를 적용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등 목적 또한 다양하다. 그레인을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후보정 과정에서 추가한다.
 
 후지필름의 다른 필름시뮬레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종류의 필름시뮬레이션에서도 입자감에 대한 언급은 기억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드물다. 하물며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 사진의 입자감을 강조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없다. 카메라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이즈와 끊임없는 싸움을 하고있다. 이러한 노이즈를 역으로 사용하는 발상 자체가 특이하다면 특이한 부분이다. 하물며 후지필름 카메라 내에 있는 그레인 필터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아크로스를 가장 독특한 필름시뮬레이션으로 꼽는다.
 

후지필름이 "필름시뮬레이션 아크로스"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

후지필름 X스토리 2016.05.02 / https://fujifilm-x.com/global/stories/the-newest-film-simulation-acros/

 
 2016년, 후지필름 홈페이지 X스토리에 "The Newest Film Simulation ACROS"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여기선 당시 최신의 필름시뮬레이션인 아크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여기서도 재밌는 부분을 볼 수 있는데, 필름시뮬레이션이 처음 도입된 2003년, 파인픽스 F700에 탑제된 모노크롬(단색)은 "B&W"라고 불렸으며, 이는 모노크롬 필름이 아닌 "PROVIA"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부분이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에게 전설적으로 여겨지는 "ACROS"를 묘사한 흑백 모드를 만들기 위해 일반적인 흑백 모드와는 다른 특정한 조건을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크로스"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위한 두 가지 조건. / https://fujifilm-x.com/global/stories/the-newest-film-simulation-acros/

 
 후지필름은 "디지털 아크로스가 되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세계 최고 품질의 그레인"이란 찬사를 받았던 아크로스 필름처럼 디테일한 표현이 가능할 것.
 둘째,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인쇄했을 때, 사진용지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인쇄 질감을 구현할 것.
 
 바로 여기서 후지필름이 디지털 아크로스를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디지털 사진에서도 "필름의 부드러운 입자감과, 인쇄된 아크로스의 질감"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입자감을 계속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더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그들은 어째서 "그레인 필터"를 권장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ISO를 높여 "고감도 노이즈"를 일으키길 원했을까?
 

아크로스의 독특함은 디지털 노이즈를 그레인 질감으로 바꾸는 것에서 나온다.

 
 후지필름은 아크로스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 필름과 같은 "알갱이 느낌(입자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필름시뮬레이션의 아크로스는 "다른 모드와는 전혀 다른 노이즈 감소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후지필름은 여기서 할로겐화 은 필름의 "알갱이 느낌(입자감)"이 디지털에서의 "노이즈"와 같다는 언급을 하는데 실제로는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아크로스만의 노이즈 감소 알고리즘"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한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주장이 꼭 틀리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후지필름은 계속해서 "노이즈를 필름의 입자감과 비슷한 질감으로 바꾸는 것"이 아크로스를 독특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미지에 그레인 필터를 인위적으로 씌우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여기서 후지필름은 "그레인 필터"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후지필름은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원래의 사진 위에 "그레인 필터"를 추가하여 흑백 필름의 입자감과 비슷한 효과를 얻지만, 이런 방법은 "원래 사진"의 구성이 변경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원래 사진의 구성이 변경되지 않는다."는 말은 필름의 특성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필름의 입자는 할로겐화 은염으로 구성된 작은 알갱이인데 빛에 노출된 정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이 입자는 그림자와 어두운 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반면 밝고 잘 노출된 영역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래의 사진에 그레인 필터를 씌우면 사진의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에서 느껴지는 입자감이 동일하기 때문에 필름의 느낌이라기엔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아크로스는 사진의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의 그레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도록 개발된 필름시뮬레이션이다.

 
 후지필름에 따르면 아크로스는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그레인 표현을 위해 이미지 파일의 핵심적인 부분부터 개발된 필름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 사진의 밝은 영역과 어두운 영역이 서로 다른 그레인을 표현하도록 유도했으며, 특히 어두운 영역에서는 흑백 필름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필름의 입상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아크로스는 민감도 설정(ISO)에 따라 입자의 출력도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감도로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아크로스의 경우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고 한다. ISO 감도가 높을수록 명확해지는 독특한 그레인 효과는 의도적으로 감도를 높게 설정하여 더욱 두드러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아크로스는 최소 24MP의 해상도와 X-Processor Pro 이상의 프로세서가 있어야 의도한대로 작동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지필름의 아크로스는 정말로 특별한 효과를 보여줄까?

 

X-T4 / xf35mm f1.4 / F13 / ISO 160 / 노출0 / ACROS

 
 후지필름이 주장하는 아크로스의 특별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준비했다. 카메라에 내장된 그레인 효과와 ISO만을 사용한 입자감을 비교하는 실험이다.
 X-T4 카메라와 xf35mm f1.4 렌즈를 사용했으며, ISO160 상황에서의 그레인 효과의 거칠기와 크기, 그리고 ISO 6400과 12800 상황에서 그레인 효과 없이 촬영했다. 먼저 앞서 본 사진은 아무런 그레인 효과도 적용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느낌을 살펴보자.

 
 확대하지 않은 전체사진을 봤을 때, 가장 큰 입자감이 느껴지는 것은 "거칠기-강"과 "ISO 12800"의 사진이다. 특히 거칠기를 "강"으로 설정했을 때, 배경에서 보여지는 입자감이 가장 두드러진다. 하지만 모든 사진이 전체적으로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림자와 어두운 영역 확대

 
 확대를 해보니 확실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레인 효과의 "크기" 부분인데, 입자의 크기를 작게 설정한 것이 크게 설정한 것 보다 오히려 거칠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입자의 크기를 크게 설정한 것은 오히려 모래를 흩뿌린 듯한 느낌을 주어 다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ISO를 높게 설정하여 찍은 사진에선 디테일이 무너지는 대신 밝기의 경계가 수체화처럼 녹아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꽃잎의 그림자 부분이 가장 정확하게 구분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ISO 6400의 경우 어두운 영역의 명암 분리도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ISO가 높은 만큼 사진 자체의 선명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
 

매끄러운 유리에 반사된 빛의 모습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입자 크기 - 작게"의 두 사진이 가장 디테일 묘사가 떨어진다.
 특히, 첫번째 사진인 "거칠기 - 약, 크기 - 작게"의 경우 선명도가 매우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거칠기 - 크게"로 설정한 두 사진 모두 괜찮은 수준의 선명도를 보여준다. 명암 또한 부드럽게 분리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ISO 6400의 사진이 정말 훌륭한 선명도와 명암 분리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다른 설정에 비해 대비가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밝은 부분을 확대하면 그레인 효과와 ISO 효과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레인 효과를 사용한 사진은 사진 위에 덮입혀진 그레인 효과 때문에 입체감이 줄어든다. 이것이 앞서 후지필름에서 주장했던 "원래의 사진에 그레인 필터를 씌우면 사진의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에서 느껴지는 입자감이 동일하기 때문에 필름의 느낌이라기엔 부자연스럽다."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앞서 보았던것 처럼 "입자 크기 - 작게"로 설정된 사진은 오히려 흐리게 보인다. 입자가 보여줘야 할 명암의 분리도는 물론이고 선명도도 다소 떨어진다. "입자 크기 - 크게"로 설정된 사진은 입자감과 명암은 뚜렷하나 확실하게 모래를 흩뿌린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높은 ISO를 사용한 두 사진 모두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레인 효과를 사용한 사진들과 달리 가장 밝은 부분에서 살짝 톤이 다운된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은 높은 ISO 값에서 비롯된 DR이 좁아진 모습으로 보인다. 
 
 밝은 영역에서 높은 ISO로 촬영된 사진이 비교적 좋은 명암 분리도를 보여주며, 입자감 또한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묘사된다. 특히 ISO 6400의 설정이 가장 부드럽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크로스, ISO를 적극 활용해도 괜찮을까?

 
 이 실험을 통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필름시뮬레이션 아크로스는 높은 ISO를 적극 사용하면 괜찮은 수준의 입체감과 입자감을 묘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ISO 6400의 경우, 좋은 수준의 선명도와 명암 분리도를 보여주며 비교적 강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에서의 입자감 차이는 크지 않으나 광질이 좋은 야외에서 촬영 시 그 효과가 더욱 두드러질것으로 기대된다.

 

ACROS ISO 6400
ACROS ISO 6400
ACROS ISO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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